칼럼
[성석환 소장의 공동체 칼럼] 광화문 전쟁

전광훈과 그의 추종자들은 과거 민주의 공간이었던 광화문을 점령했고 언론과 사람들은 ‘광화문 사건‘을 촛불이나 축제의 공간이 아니라 반정부 집회가 벌어진 광란의 공간으로 호명하기 시작했다. 서울나들이 하는 지방 사람들은 반드시 가 보고싶은 곳, 세월호의 기억들이 서린 곳, 외국 사람들이 한국의 상징으로 기억하는 곳, 책 보러 가는 곳, 역사 속의 위인들을 만나는 곳, 한때 비자 받으러 가는 곳이기도 했던 광화문은 이제 전쟁터가 되었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는 지금도 노래방 애창곡이고, 대체 노래에 나오는 그 작은 교회당이 어디냐 묻는 연인들에게 광화문은 나름 낭만적 데이트 코스였는데 지금은 혹시나 감염이나 되지 않을까 걱정되어 가까이 가기도 어려운 곳이 되었다. 어쩌다 이리 되었나! 몇 해 전 남대문을 불살라 버린 노인은 이유를 묻자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라고 대답했다던데, 광화문에 드리워진 이 부정적 이미지 역시 지금 청와대의 주인 때문인 것인가?
대체 왜 그들은 광화문을 전쟁터로 삼는가? 광화문은 예로부터 육전을 좌우로 하여 대궐로 이어지는 한양의 중심가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정부청사와 청와대가 연결되는 정치적 공간이다. 도시건축학자들은 지금 광화문이 거대한 섬 같다 하여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밀어 붙여서 그야말로 제대로된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는데, 그후 진행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 길은 없다. 박시장이 그리 가고 난 후라 실행이 더욱 어려울 것이 뻔하다.
소위 진보가 서초동 세력으로 호명되면서부터 전통적인 진보의 공간인 광화문은 이내 보수의 공간이 되어버렸으니, 이 변화무쌍한 공간의 정치학은 그대로 현대 한국정치사를 대변한다. 광화문을 두고 벌이는 이 치열한 점령 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권력의 상징이며 대표적인 공적 공간인 광화문이 대체 무엇이기에 제세력들 마다 그토록 이곳을 원하는 것일까? 간단하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권욕욕망을 공간에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공간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부터이다. 모두에게 허용된 아고라가 대표적인 전통적 공적 공간이라고 하면, 가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사적 공간이라 할 것이다. 물론 최근에야 가정에서조차 부모라 하여 함부로 자녀들에게 군림하거나 남편이 아내에게 갑질을 했다가는 사회적 지탄을 면치 못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이 사적 공간이 공공화된 것을 두고 민주화라 해야 할지 혹은 사생활 침해라 할지는 입장에 따라 다르다.
공적 공간은 공유 공간이기도 하다.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고, 누구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이 공간을 지배할 수만 있다면 곧바로 모두의 영웅이 되고 위대한 선조들의 계승자가 되는 것이며, 당장 눈앞에 잡힐 듯한 권력의 핵심부에 다다를 것 같은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그곳에 텐트를 치고 경계선을 지어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사유화하려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욕망은 한결같다. 자신들이 나라를 구하고 난세를 구할 지도자임을 자임한다. 그 정점에 놀랍게도 이번에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가 나섰다. 그는 광화문에 서서 풍전등화의 조국을 구하려면 신의 계시를 받은 자신의 소리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대통령도 아래로 깔아 시정잡배의 웃음 소재로 만들고, 심지어 자신이 섬기는 신을 향해서도 “까불지 마!”라며 자신의 위용을 만인에게 자랑했다. 그러나 그가 몰고 온 것은 감염병의 확산이었다.
그를 향한 사회의 낙인은 단지 그를 향한 것만이 아니다. 공공의 종교라 자처해 온 한국 개신교가 싫든 좋든 이 광화문 전쟁 한 가운데 서게 되었다. 권력을 향한 오랜 욕망은 단지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솔직하게 고백해야 이 치욕스러운 전쟁에서 그만 물러나 고요히 들려주시는 신의 음성을 세미하게나마 들을 수 있으리라. 거대한 광장, 위대한 영웅, 무소불위의 권력,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