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석환 소장의 공동체 칼럼] 온라인은 죄가 없다

비대면 모임을 위해 가장 많이 활용되는 플랫폼은 ‘줌(zoom)‘ 서비스이다. 필자도 수업이나 회의를 위해 셀 수 없을 만큼 여러번 줌을 활용했다. 학교는 교수들에게 이 서비스의 활용법을 알려주는 세미나까지 제공했었다. 코로나19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2020년 1학기 수업은 그야말로 대혼란이었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우왕좌왕 하며 학생들은 이미 익숙해져 있는 온라인 환경에 적응하느라 진땀 꽤나 흘렸다. 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2학기에는 방학 중에 준비를 단단히 한 탓인지 다들 능수능란하게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큰 무리없이 진행하고 있는 듯 하다. 필자가 몸 담고 있는 신학교의 특성 상 대면하여 인격적 혹은 인간적 끈끈함을 매개로 관계를 형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누구든 코로나19에 감염되면 학교, 교회 전부 문제가 되는 전도사, 목사의 신분이라 온라인 수업으로 최대한 관계를 형성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2학기에는 졸업반 신대원 학생 40여 명과 2박 3일 간 전국을 다니며 학생들이 앞으로 어떤 목회를 할 것인지를 구상하도록 돕는 수련회를 갖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부득이 이 또한 비대면 온라인 수련회로 2일로 줄여 숙박 없이 진행해야만 했다. 학생들이 함께 버스를 타고 다니며 대화와 토론을 하기도 하고, 공동식사를 하며 동기들 간 깊은 교제도 나눌 기회였는데 그조차도 할 수 없게 되니 학생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임원들에게 온라인 미팅이라도 조금 더 창의적 방식을 도입하여 뭔가 추억에 남을 만한 기획을 해 보자는 제안을 했고, 임원들은 박스에 간식과 그림문구와 여러 과제수행 메시지(예컨대 기도짝 정해주기, 마니또 처럼)를 담아 수련회 전에 각자 받아볼 수 있도록 주소로 택배를 보냈다. 미리 개봉하지 말라고 공지했고, 당일 한꺼번에 개봉하여 이틀 동안 함께 나눌 수 있는 활동을 진행하였다. 자신의 키워드를 그림으로 표현하기, 동봉한 촛불을 활용하여 함께 찬양하기 등.
막상 해 보니, 유무선 랜선의 환경이 원활하지 않아서 100%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영상과 음악과 활동을 버무린 색다른 예배진행이 가능했다. 오프라인 예배에는 학생들의 참여가 기껏해야 말씀 읽기 정도였다면, 각자의 스크린에서 자기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참여 수준을 더 높일 수도 있었다. 학생들에게는 이번 기회를 통해 온라인 공동체의 가능성을 경험해보는 색다른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출석 때문에 열심이었을 것이긴 하다)
그런데 학생들이 경험한 긍정의 온라인 경험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곧 학교와 교회에 전해졌다. 얼마 전에 최초의 온라인 총회로 주목을 받았던 통합교단의 이야기이다. 몇 해 동안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대형교회의 세습문제, 광화문에서 자칭 예언자로 나서는 이에 대한 이단 시비 문제 등을 다뤄야 했기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결론적으로 총회는 온라인 사용의 가장 부정적 사례가 되었다. 특정 집단의 이익에 미리 짜여진 각본에 따라 진행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총회 도중 발생한 온라인 담당 행정직원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충격적 사건이었다. 애초부터 기술적으로 준비가 덜 된 총회였다. 그들은 온라인의 한계를 극복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그 한계를 악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필요를 관철하려 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애초에 온라인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표현할 생각은 아예 없었을 것이니, 소중한 생명이 죽어 나가고 민주적인 아름다운 전통을 무시하고 억지로 진행된 총회로만 기억될 뿐이다.
온라인은 죄가 없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악용하는 바람에 전체 공동체의 유익을 고려하지 않은 이들의 잘못이다. 그로 인해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창의적으로 대비해야 할 온라인 소통과 공동체 형성에 부정적 인상만 남기고 말았다. 총회의 불법, 탈법의 법리를 넘어, 거대한 전환기에 자신들이 행한 이 작태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미래의 온라인 공동체에 참여할 자격이 당신들에게는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