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석환 소장의 공동체 칼럼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을 지키는 2021년을 기다리며"

위기를 기회로 여기라는 가르침은 예나 지금이나 유효하다. ‘코로나19’는 아직 진행 중인 위기이지만, 기회로 생각하고 대처하여 다가올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은 대안을 찾느라 분주하다. ‘뉴 노멀‘은 ‘올드 노멀’에 비해 더 합리적인 세상을 요청한다. 그 동안 권위적인 방식으로 혹은 중앙집권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은 더 많은 이들이 합의하고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뉴 노멀‘에도 기준이 필요하다. 수평적 네트워킹 방식의 신작로를 제대로 놓으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적 자원들이 동원되어야 한다. 이미 공론화되고 있는데, ‘공정, 공유, 공평’ 등과 같이 승자독식의 경쟁체제가 아니라 함께 번영하는 협력과 참여의 문법이 필요하다. 단순히 제도로 다져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가치에 동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함께 답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 질문에 사회의 구성원들이 동의할 수 있는 답을 제시해야 하는 일차적인 책임은 정치인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타인의 위한 삶으로 살겠다 고백하는 이들이다. 신앙인들이 자신만을 위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면 그들의 신앙은 스스로 속이는 허위의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켜내고자 하는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지금과 같이 위기의 시대에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이다.
서로 물고 뜯는 정치인들에게 소망을 거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우리는 지난 세월 충분히 배웠다. 노동과 노동자의 가치를 오로지 돈과 이윤으로만 환산하는 기업논리는 여전하다. 온 나라가 부동산 열풍이 미쳐 날뛰고 있고,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는 청춘들조차 ‘영끌투자‘에 나서고 있다니, 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다름 아닌 돈이니, 오로지 ‘나만을 위한 돈’이다. 돈을 얻느라 ‘더 소중한 것‘을 잃으면, 나와 공동체를 망가지게 하고 분열하게 만든다.
2020년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이제 2021년에는 우리 모두 ‘생각‘하고 ‘성찰’해야 한다. 대안을 만들고 준비해야 한다. 가게를 접고 장사를 폐업하고 생계가 막막한 이들이 도처에서 울먹이고 있다. ‘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우선 포기할 것들을 내 던지는 이들에게 남은 수순은 그 ‘더 소중한 것’조차 외면하고 살아가기로 마음 먹는 일이 남긴다. ‘코로나19’에 대처하느라 허둥대던 정부도 임기응변 대책만 내지 말고 ‘더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깊은 정책을 내야 한다.
‘더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정치권 구호처럼 회자되어 그 가치가 하락(?)하긴 했으나, 그래도 우선 ‘더 소중한 것‘은 인간,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사람을 보호하고 생명을 지키는 진지하고도 한 차원 깊은 배려가 필요하다. “일하다 죽지 않기”를 소망하며 곡기를 끊고 법 제정을 요구하는 이들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과 함께 추운 겨울을 나고 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은 없다. 누구나 다 생존에 지친 탓이겠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지키고, 지지하고, 참여하는 따듯한 심장을 가진 교회는 언제나 볼 수 있으려나. 정치에 휩쓸려 이념의 깃발을 흔들며 생각이 다른 상대에게 살기마저 드러내는 교회의 얼굴이 언제나 모든 것을 품을 것 같이 소박하고 넉넉한 시골 할머니의 미소를 드러내려나. 우리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사랑‘이라 선언하며, 세상의 이기심에 맞서는 2021년이 되기를 바란다.